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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좋은 글

마중물의 원리

책속좋은글 2011. 6. 9. 10:26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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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중물의 원리
    에듀클래식 발행인 김종섭
     
     
       
     
     
     


    절대 시각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왕의 권좌를 버리고 한 여자를 선택한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8세. 1936년 조지 5세의 대를 이어 국왕이 된 에드워드 8세는 6개월도 안돼 두 번이나 이혼한 경력에 나이도 연상인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선택하고 왕권을 미련 없이 포기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절대권력을 가진 왕의 자리가 한 여자보다 그 가치가 뒤진다는 것인가? 아무튼 세기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하)(북공간)라는 책에는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을 이렇게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는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왕이 된 동생 조지 6세를 영웅화하는 반면, 에드워드 8세는 도박과 파티를 좋아하는 철없는 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시각이 맞는 것일까?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다.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성인이라고 배웠지만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는데 왜 세종이 만들었다고 칭송하는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또 정조가 개혁적인 인물이라며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정조는 실사구시를 모토로 실용적인 정치를 주장하는 정치인과 학자를 매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이 옳은가? 세상 만물과 이치가 한 가지 시각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교만인가?
    그렇다면 사랑은 주는 것이 먼저일까, 받는 것이 먼저일까? 세상만물의 이치가 한 가지 시각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이라고 했는데,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언젠가 서점에서 ‘마중물’이라는 책을 보고 ‘참 제목을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와닿는게 있었다. 마중물 자체가 아니라 마중물의 인도를 따라 ‘쭉’ 펌프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지하수를 상상했다. 그런데 만약 마중물이 없다면 어찌될까? 지하수는 나올 수 없다. 사랑은 마중물이다. 사랑을 먼저 주어야 또 다른 사랑이 인도되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논리의 확장을 발견할 수 있다. 마중물을 넣어서 일단 물이 나온다 해도 그 다음에 계속해서 펌프질을 하지 않고 가만 있으면 어찌 될까? 당연한 일이지만 물이 안으로 들어가 작두펌프는 다시 메마른 상태가 된다. 작두펌프를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은 고갈되고 만다. 사랑를 받으면 끝없이 그 사랑을 펌프질해 전달해야 한다.
     
    은혜는 아무런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
     
    사랑도 먼저 주어야 하지만 은혜도 마찬가지이다. 하버드 의대 심리학과 교수인 제니스 리바인은 ‘은총’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에서도 은혜란 상대방의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떠나서 신이 인간에게 무조건 베풀어주는 어떤 것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면서 기적 같은 일을 많이 겪게 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슬픔이 그대의 가슴에 밀려와 소중한 것들을 몽땅 쓸어가 버릴 때면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싯구처럼 은혜의 강수(江水)를 경험하게 된다. 은혜란 내가 뭘 잘해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무작정 나에게 주어진 행운인지 모른다. 물론 생각지도 못할 일을 당하는 ‘절망’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내려진 것이 아니며 내가 어떻게 콘트롤 할 수 없이 그냥 주어진 일일 수 있다.
     
    영국 귀족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여기서도 논리를 확장해보자. 은혜와 슬픔의 마중물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그 은혜가 또 다른 은혜를 발생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은혜의 흐름이 멈추어 자기가 받은 은혜도 사라지고, 남에게 줄 은혜도 영영히 사라지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영국의 귀족들이 갖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이 원리를 설명하는데 적절하다. 귀족계급은 자기의 능력이 뛰어나서 특권층이나 식자층이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 보니 이미 주어진 환경이 은혜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올라앉게 된 신분이다.
    그들은 그 신분에 대한 은혜를 자기만 갖고 있지 않고, 그 신분으로 앞장설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남들보다 먼저 선행하고 앞장서 일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중물로 받은 은혜를 가만히 앉아 썩히지 않고 또다른 은혜의 마중물을 쏟아낸다. 은혜는 그렇게 순환한다.
     
    은혜와 선물의 유통이 불러온 결과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作)라는 초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일화가 있다. 앞서 가던 자동차의 운전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뒷자동차의 운전자를 위해 통행료를 대신 지불해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무 이유없이 도움을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혹시 흑심 품는 건아닌가?’ 하고 의심부터 한다. 은혜를 경험해보지 못하거나 우리가 호흡하는 것 자체마저도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선물의식은 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족장이 선물을 주면 그 선물은 부족장에게 전달되고 돌고돌아 다시 족장에게 돌아온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선물보다 귀한 것이 유통된다. 바로 감사의 마음이다. 이처럼 족장의 선물이 마중물이 되어 부족 구성원들은 선물을 돌리면서 끝없이 감사의 펌프질을 하는 셈이다. 그들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송인 김제동이 진행하는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작은 선물을 기탁받은 후 그 선물을 교환해나가면서 점점 크고 가치 있는 물건으로 확장돼, 나중에는 집 한채까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을 보았다. 은혜의 유통이 바로 이런 것이다. 마중물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랑을 먼저 주는 것이 만고불면의 법칙
     
    혹시 내가 받고 있는 은혜가 적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우리가 받은 음악적 은혜부터 남에게 퍼부어주자. 아무런 조건을 달지 말고 어떤 댓가를 바리지 말고 음악의 마중물을 부어주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마중물은 봉사다. 학원이 안된다면 무엇을 얻고 가지려는 마음 대신 먼저 찾고 주고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주고 봉사해보자. 갖는 것보다 먼저 주는 것. 사랑을 받기 보다 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감동을 만들고 감동은 사랑으로 비워진 마음에 더 큰 선물로 돌아온다. 이것이야말로 만물의 법칙이다.

    에듀클래식 발행인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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