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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 육아
    법륜/엄마수업

    육아와 직장 생활 사이

    직장에 다니다 아이를 낳으면 애 볼 사람을 구해서 맡겨 놓고 다시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
    니다.

    일단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취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다시 일을 나갑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를 둔 아이의 경우 어릴 때는 별문제 없는 듯 보여요. 하지만 대체로 사춘기가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엄마가 자식 문제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애한테 매달리는데,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아이가 정말 엄마를 필요로 할 때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팽개 치고, 부모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찰싹 붙어서 아이를 관리하려고 드니, 오히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도 못 막는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포클레인을 가져와도 안 될 만큼 일이 커지는
    거예요.

    아이에게는 엄마 품에 안겨서 클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직장에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2, 3개월도 채 안 된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깁니다.

    이것은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로부터 사랑받고 보호받을 자기 권리를 빼앗긴 것과 같아요. 아이가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싶겠어요. 엄마 품에서 자라고 싶겠어요?

    당연히 엄마 품에서 자라고 싶겠지요. 돈으로 엄마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아이는 태어나서 엄마에게 보호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엄마는 일단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어렵고, 아이가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면 부모가 그 과보를 늙어 죽을 때까지 받게 됩니다.

    옛날 아이들은 어머니들이 일한다고 바빠서 김매던 콩밭에 그냥 던져 놔도 다 잘 컸어요. 일곱 명, 여덟 명씩 낳았어도 다 잘 컸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을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를 늘 곁에서 보고 자랐지요.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달라요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엄마든 아빠든 반드시 부모가 키워서 아이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람 저 사람 손을 타면 아이가 불안해해요. 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
    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갓난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혀 준다고 해서 그걸 아이가 아는 것도 아니에요 부모가 어리석어서 그걸 자식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돈 때문이든, 자아성취를 위해서든 직장 생활을 하다가 회의를 느낀다는 엄마가 많습니다.

    "직장생활만 20년 넘게 했고, 가정에서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지고, 남편도 가정보다는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좋아해 집안일이나 아이들 문제 등이 모두 제 차지라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불평불만을 토로합니다.

    저도 성격이 예민하고 나름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터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데 아이들이 걱정되고 그럴 용기도 없어 힘이 듭니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엄마는 직장 생활은 잘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망해진 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직장을 열심히 다녔는데, 남편과 자식이 몰라준다 싶은 겁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러나 이 엄마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직장생활은 자신의 문제지, 남편과 자식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는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서, 가정을 위해서 직장에 다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 돈 문제예요.

    아이를 정말 사랑하면 세 살 때까지는 방도 없이 텐트를 치고 살아도 엄마가 애들을 키워야 합니다.

    '애 키울 동안은 20평 살다가 10평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전적으로 책임지고 맡아서 키우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기른 사람이 엄마예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느라 자식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에요. 그저 돈을 댄 사람일 뿐이죠 옷 사 주고 장난감 사 주는 일은 열심히 했겠지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 있어요. 아이를 품에 안고 돌보는 시간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를 남한테 맡겨서 키울 때는 애가 나에 대해서 잘하리라는 기대를 안 해야 해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자기 볼 일 보러 다녀놓고, 아이가 나에게 잘하리라 기대했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괴로운 거예요.

    흔히 가정에서 아빠들이 자식에게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애들은 다 누구 편을 듭니까? 엄마 편을 들어요. 애들은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감싸는 사람, 자기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 다 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아이를 돌봐야 할 시기에 안 돌보면 애들이 엄마 고마운 줄 모릅니다. 남편도 아내 고마운 줄 몰라요. 그러면 나중에 힘들게 직장 다니며 일한 본인만 억울하고 괴롭지요.

    보통 부부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보면,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바깥 활동에만 치중하는 데서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그때 남편은 뭐라고 합니까.

    "돈 줬잖아. 생활비 줬잖아." 이러면서 큰소리치잖아요. 이 말의 의미는 직장 생활해서 돈만 주면 가장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엄마가 회사에 열심히 다니면서 가정경제를 책임졌다고 항변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돈 번다고 엄마의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돈을 벌었을 뿐이고, 자기 개인의 문제일 뿐이에요. 남편에게는 아내가 필요하고 애들한테는 엄마가 필요하지 직장에 열심히 다니는 돈 버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내가 직장에 힘들게 다녀서 돈 벌어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었는데 왜 고마운 줄 모르느냐'라고 항변하는 것은 자기 생각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가정에만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려면 아이의 나이를 고려해야 해요.

    만약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면 사회 활동을 그만두든지 아니면 줄여서라도 아이를 최우선에 두어야 해요.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서로 대화를 하는 게 좋아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변명이 아니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엄마는 지금 일을 해야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너도 네 인생이 있듯이 엄마도 내 인생이 있단다. 공부하는 게 네 할 일이라면, 엄마는 일이 필요하단다."

    아이가 초등학생만 돼도 대화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 조심할 것은 아이한테 허락을 받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에요. 가끔 보면 아이한테 허락을 구하는 부모가 있어요.

    아이를 상전처럼 모시고 허락을 받으면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자신의 일은 자기가 결정하되 아이와 대화를 나눠서 이해를 구하는 거예요.

    그러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그때부터는 아이에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때는 오히려 관심을 끊어 주는 게 좋아요.

    아이에게 관심을 안 갖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자기 일을 하도록 지켜봐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아이가 몇 살이냐에 따라 기준을 정하는 것이 현명한 엄마가 되는 길입니다.

    출처 : 법륜 지음 '엄마수업'

    법륜 엄마수업
    법륜 지음 '엄마수업'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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