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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교육

책속좋은글 2024. 6. 27. 05:1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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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르타 교육
    스파르타 전사를 묘사한 청동상-스파르타 시민은 20세에 정식 전사가 되고, 60세부터 군역에서 면 제되는데, 당시 60세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거 의 없었다. 메세니아를 정복하여 그곳의 주민들을 노예로 부려서 생활했다고 한다.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에 세운 도시국가로 귀족정치를 실행하여 본토인을 노예화하고 자국민에게 군국주의식 교육을 하였다.

    기원전 5세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격파하고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으나 쇠퇴하여 기원전 146년에 로마에게 말했다

    스파르타 교육

    스파르타 교육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엄격한 교육방식을 말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에서 실시했던 국가주의적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리아 사람이 세운 스파르타와 이오니아 사람이 세운 아테네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국가였으나 그 사회적, 경제적 성격은 상당히 달랐다.

    아테네는 상업이 발달한 개방적이고 문화적이었던 반면에 스파르타는 농업이 주를 이루는 공동체적이며 폐쇄적이고 군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지리적인 여건에 있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예제가 성격적으로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테네의 노예는 주로 소아시아 등의 외지에서 팔려온 이민족으로서 노예끼리의 연대의식도 적었고 주인에게 절대복종했다.

    그에 반해 스파르타의 노예는 도리아 종족의 남침으로 정복된 토착주민인 헤일로테스와 페리오이코이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들의 차단을 막는 동시에 강력한 제도가 필요했다.

    당시 스파르타 사회의 군사적 생활양식을 비롯해서 폐쇄적, 무단적 성격을 제도적으로 확립시킨 것은 리쿠르고스라는 입법가라고 전해진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작가 플루타크가 밝힌 리쿠르고스의 입법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로원을 만들어 왕과 동등한 표결권을 준다.

    둘째, 불공평하게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근본적으로 재분배해서 빈부의 차이를 없앤다.

    셋째, 나태와 사치를 몰아내기 위해 공동 회식제라는 식사제도를 채택한다.

    이 중에서 특히 세 번째 항목이 눈에 띄는데, 그때까지 사람들은 하인들이 만든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낮잠과 목욕, 휴식 등으로 나태함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스파르타에서는 리쿠르고스 제도로 땅을 가진 자유 시민 계층의 평등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적, 사회적 토대 위에 중무장한 보병의 전투 집단인 팔랑크스의 군사력이 뒷받침되어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파르타 시민이 정치와 군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를 가혹하게 탄압한 덕분이었다.

    출처 : 김영진 지음 '교양으로 읽는 세계사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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