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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병법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위태롭지 않은 것이 최상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내 상황만 알고 있다면 한번은 승리하고 한번은 패배한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내 상황도 모르면 매번 전쟁을 할 때마다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은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한 번쯤 다 들어 봤고 한자를 몰라도 뜻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확한 원문은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百 戰不殆) 입니다.

    저도 <손자병법>을 접하기 전까지는 '지피지기백전백승'인 줄 알았습니다. 단순한 이 두 글자 차이에는 엄청난 '다름'이 숨어 있습니다. <손자병법>의 <모공>에 나오는 이 말은 백 번 싸워 백 번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백 번의 전쟁을 치러도 위테롭지 않다는 것을 뜻하죠.

    두 글자 차이에 담긴 인생의 진리

    수많은 전쟁을 치르다 보면 전쟁은 이겨도 장수가 죽을 수도 있고, 정치 권력이 무너질 수도 있고, 나라 자체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자가 말하는 백전불태는 수많은 전쟁을 겪더라도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거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지 않고 정권도 온전히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끄떡없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싸움에 이기고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이 잘 납득이 가지 않겠죠. 하지만 전쟁은 물자, 사람, 시스템 등 국가의 전체적인 힘을 쏟아붓는 총력전이므로 이기고도 지치거나 망할 수 있습니다. 불태의 실패, 즉 '승자의 저주'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세 명의 기술자 케이펜, 클랩, 캠벨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합니다.

    석유 회사들이 채굴권을 얻기 위해 경매를 했는데, 경매가 종료된 후 경매에 승리한 기업이 사후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승자에게 내려진 저주 같다고 해서 '승자의 저주'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기업 인수 합병(M&A) 등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전적이고 대표적인 전쟁 사례로는 '피로스의 승리가 있습니다.

    그리스 북부 에피루스 지방의 왕 피로스 1세는 로마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뒀으나 연속적인 작은 전쟁의 승리감에 도취돼 인심을 잃고 주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결국 큰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항우도 싸움에서 이기고도 불태에 실패했습니다. 항우는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과 용맹함을 바탕으로 거병 후 고작 2년 만에 중국을 제패하고 패왕으로 군림합니다.

    몇천 명의 병사로 수십만 대군을 패주시키거나 단신으로 기병 수백여 명을 쓸어 버리는 등 기록만 보면 무협지를 보고 있다고 착각할 지경입니다.

    팽성 대전에서는 고작 3만의 군사로 56만 대군과 맞붙어 아군에게는 별다른 피해 없이 적군 30만 명을 일방적으로 초토화시켰습니다. 이는 전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입니다.

    몰락한 귀공자 출신의 항우는 자신의 무용과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천하를 석권하고 정점에 올랐으나 군주로서의 정치 능력 부족으로 몰락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드라마틱합니다. 패왕(王), 만인지적(萬人之敵),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등은 모두 항우로부터 유래한 말입니다.

    지금도 그는 용맹한 장수와 힘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죠. 31세의 짧은 일생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강렬한 힘과 개성, 포스를 떨치고 우미인과의 로맨스 등 많은 이야기를 남긴 그는 《초한지>, <패왕별희> 등 다양한 작품의 영감이 됐고 '영웅호걸', '최강의 사나이', '짧고 굵게 살다 간 사나이'의 대명사로서 2,2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70여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항우지만, 해하 전투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당하며 그의 삶은 죽음으로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이 지점이 바로 손자가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를 주장하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수많은 승리,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단 한 번의 패배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백승이라는 환상보다 중요한 것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사소한 일이든 뭐든 시도하면서 살아갑니다. 꼭 거창한 도전이 아니라도 취업 면접이나 자격시험을 본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런 일들이 어느 정도의 승률을 기록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합격과 불합격, 당선, 탈락, 점수 몇 점 등 명확한 등급이나 수치로 승패가 뚜렷한 것도 있지만 만족, 불만족 등으로 비계량적인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승률은 어느 정도 됩니까? 당연히 백전백승은 없을 것이고 아마 절반의 승리도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객관적인 승률의 좋은 사례로 야구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KBO리그는 2015년 이후 타율이 0.290 이상이면 일단 준수한 타지로 평가하고, 0.310 이상이면 팀 내 핵심 타자로, 0.360 이상이면 리그를 지배하는 최고 수준의 타자로 평가합니다.

    만약 4할, 즉 40퍼센트 이상의 타율이면 전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누가 백전백승이라고 얘기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허풍이겠거니 흘려버리겠죠.

    하물며 죽고 사는 전쟁터에서 100퍼센트 전승인 백전백승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가정 자체가 잘못됐고 확률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환상이죠.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두 번은 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실전에서 백전백승은 없습니다.

    그래서 손자는 백번의 싸움에서 한두 번, 열 번, 20번, 설령 완패하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끄떡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의미로 불태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이기는 것보다 위태롭지 않은 것이 현실적으로 최상의 전략이라고 본 것이죠.

    기왕 스포츠 이야기를 했으니 스포츠 스타들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의 프로야구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루수 이안 킨슬러가 메이저 리그 통산 성적 1,888경기 타율 2할6푼 9리(7,423타수 1,999안타)로 2,000안타를 단 1타 남겨 두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에 앞서 워싱턴 세네터스의 역사상 최고의 타자 샘 라이스는 2,987안타로 3,000안타에서 단 13타 남겨 두고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이 둘은 왜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은퇴를 선인했을까요? 정말 아깝습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은 1972년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갈색 폭격기', '차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독일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축구계의 전설입니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은 그를 '20세기 아시아 선수'로도 선정했습니다. 그는 리그 통산 98골을 기록하며 돌연 은퇴했습니다. 왜 단 2골을 눈앞에 두고 100골의 문턱에서 은퇴를 선언했을까요?

    이번에는 죽음을 넘나드는 검객 이야기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입니다.

    전국의 고수와 60여 차례의 진검승부를 벌이며 '도장 깨기'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29세 이후 더는 검술 시합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왜 갑자기 멈췄을까요? 29세라면 젊고 혈기도 왕성했을 텐데 말이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도 분명 100승에 도전하고자 하는 충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의 도전이 이전의 도전과 다를 것임을 감지했고 필시 죽음과 함께 60승 무패 기록이 깨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챘을 것입니다. 그래서 멈춘 것입니다. 이런 지피지기의 상황 판단으로 그는 검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손자병법>을 익혀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 영웅 차범근, 이안 킨슬러, 샘 라이스,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결과적으로 지피지기를 통해 100승이라는 환상보다는 불태라는 안전한 현실을 선택했습니다. 진정한 승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자병법>에는 보이지 않는 클라이맥스가 숨어 있습니다.

    손자는 오나라 왕 합려에게 고용돼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를 굴복시키지만 기원전 504년(합려 11년) 어느 날 갑자기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왜 갑자기 은퇴했을까요?

    합려는 충신 오자서를 죽이고 고사성어 '와신상담(膽)'의 주인공인 월나라 왕 구천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막바지에 분별력을 상실한 합려의 태도를 보고 백전불태의 지혜로운 손자가 위험을 느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사업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경영이 아니라 위태롭지 않은 경영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다 보면 열 개 중 한두 개는 실패할 수도 있겠죠.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가 두렵다고 도전을 멈출 수도 없습니다. 사업에서 도전과 시도는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실패가 회사의 존망과 연결돼서는 안 된다는 것, 한두 번 실패해도 끄떡없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불태의 핵심입니다. 부디 불태하십시오.

    출처 : 최송목 지음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손자병법
    최송목 지음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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