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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Socrates)

    소크라테스(기원전 약 470~399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문답을 통하여 상대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시민의 도덕의식을 개혁하는 일에 힘썼다.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독배를 받고 죽었는데 그의 사상은 제자 플라톤의 대화면」에 전해진다.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소크라테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더 오래 전에 아테네의 입법자였던 솔론이 했다고도 하고, 천문학의 선구자였던 탈레스, 지구 자전설을 주장했던 피타고라스가 한 말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 와서야 이 말이 구체적으로 "네 분수를 알라."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가 한 말로 굳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즉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이 말에 '자기를 인식한다'는 철학적 내용을 담아 사용했던 적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도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자기인식은 당시 그리스 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소피스트들에게서는 바랄 수 없었던 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혁명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소크라테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려 있는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독배를 건네받 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소피스트들로부터 미움을 산 소크라테스는 민심을 혼란시킨다는 이유로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법정에서 자기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힌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플라톤의 「대화편」에 잘 기록되어 있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그의 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헤어질 때가 됐소이다. 그러니 이제 서로의 길을 찾아 떠납시다. 나는 죽음의 길로, 여러분은 삶의 길로...... 어느 길이 더 좋은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서 당근 즙에 독을 탄 잔을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울고 있는 친구와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울지들 마시오. 남자는 죽음 앞에 썼을지라도 절대 울어선 안되는 법이오."
    이윽고 독이 퍼지는 것을 느낀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몸을 눕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클리토라는 제자에게 말했다.
    "클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오스 (의술의 신)에게 닭을 제물로 바친다는 걸 깜빡 잊었네. 자네가 대신 닭을 좀 바쳐주게나"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오늘날 우리에게 악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후에 사람들이 과장하여 전한 것이라고도 한다. 오히려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에게 소크라테스의 삶이 너무나 독특했다는 주장이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악처를 아내로 맞아들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경마를 잘하려는 사람은 일부러 사나운 말을 골라타는 법이오. 사납게 달리는 말을 잘 다룬다면 다른 말을 타기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소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아내의 잔소리를 참고 견디면 세상에서 상대하기 힘든 사람은 없지 않겠소?"

    아내가 심한 욕지거리를 해대며 소크라테스의 머리에다 물을 쏟아 부었을 때도 그는 태연하게 천둥과 번개가 친 다음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 하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고 한다.

     

     

    소피스트(sophist)

    기원전 5세기 무렵 주로 아테네의 자유민으로서 교양이나 학예 특히 변론술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이 있는데, 후기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변론술을 악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궤변가를 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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